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해제를 선언하며 통행료 징수를 본격화한 가운데,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와 일본 국적의 대형 선박들이 해협을 통과했다.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프랑스 해운 대기업 소속의 크리비호와 일본 상선 미쓰이의 LNG 운반선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요구하는 우회 항로를 따라 무사히 항해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통과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폐쇄하지 않았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동시에, 서방 국가들에 실질적인 ‘통행료 납부’를 압박하는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국가별 우호도를 1등급에서 5등급으로 분류하고, 등급에 따라 차등적인 통행료를 부과하는 이른바 ‘호르무즈 프로토콜’을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해상 수송로를 인질로 삼아 미국의 경제 제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프랑스와 일본 선박의 통과는 막혀 있던 에너지 수송에 숨통을 틔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이들이 지불해야 할 통행료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이란이 요구하는 통행료는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거액의 달러를 지급하는 행위 자체가 서방 국가들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 측은 미국과 이스라엘 관련 선박에 대해서는 여전히 철저한 통제와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우호국으로 분류된 중국 등의 대형 선박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선택적 통행’ 전략은 서방 동맹국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의 안정적인 외화 수입원으로 만들려는 ‘저항 경제’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이번 프랑스와 일본 선박의 사례가 향후 다른 국가 선박들의 통행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경우, 이란이 제시한 통행료 제도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고 육로 우회로를 찾을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이제 군사적 대결을 넘어 치열한 경제적 주도권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장호진 기자 (daegunewsdes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