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중앙은행(ECB)이 향후 통화정책 운용에서 과거와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보다는 경제 상황에 맞춘 점진적인 대응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최근 에너지 가격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지만 2022년과 같은 초강도 긴축 국면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29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연례 포럼에서 “현재는 2022~2023년과 같은 강도의 정책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며 앞으로는 경제 충격의 성격과 규모를 면밀히 살피면서 금리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유럽은 미국과 달리 신중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CB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물가가 치솟자 2022년 7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예금금리를 -0.5%에서 4.0%까지 빠르게 인상하며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당시와 같은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ECB의 판단이다.
ECB는 이달 예금금리를 2.00%에서 2.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는 이란 전쟁 이후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올린 사례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번 금리 인상이 단순히 미래 물가 상승에 대비한 ‘보험성 조치’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면 향후 수년간 물가상승률이 ECB 목표치인 2%를 웃돌 가능성이 있었으며, 다양한 경제 시나리오를 검토한 결과 이번 결정은 충분히 타당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ECB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활용했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다시 기준금리를 중심으로 정책을 운영하는 정상적인 통화정책 체계로 복귀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특정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앞으로는 복잡한 포워드 가이던스보다 경제지표를 중심으로 매 통화정책회의마다 판단을 내리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유로존의 물가 흐름과 경기 상황을 감안할 때 ECB가 올해 추가로 한 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관세 정책과 중동 정세,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주요 변수로 남아 있어 향후 통화정책도 경제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호진 기자 daegunewsdes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