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전역이 40도를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에 휩싸인 가운데 냉방 인프라 부족이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되고 있지만 높은 에너지 비용과 오래된 건축물, 탄소중립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에어컨 보급이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서유럽에서 시작된 폭염은 중부와 동유럽까지 확산하며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영국, 체코, 폴란드 등에서 연일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40도를 넘어섰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과 정전, 철도 운행 차질 등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는 41.7도를 기록하며 지역 최고기온을 경신했고, 체코와 폴란드도 40도를 넘는 이례적인 더위가 이어졌다. 프랑스는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높은 6월 평균기온을 기록했으며, 스페인에서는 폭염으로 고령자 사망 사례가 발생했다. 영국도 잉글랜드와 웨일스 일부 지역에 폭염 적색경보가 발령되는 등 유럽 전역이 극심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폭염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보급률이 90%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냉방시설 보급이 더딘 가장 큰 이유로 과거 기후 환경을 꼽는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여름철 냉방 수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에어컨은 오랫동안 생활필수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인식돼 왔다. 이에 따라 상당수 주택과 건물도 냉방시설 없이 설계됐다.
높은 전기요금도 보급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유럽은 미국보다 에너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가 많아 에어컨 설치뿐 아니라 유지비 부담도 적지 않다. 여기에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 중앙 냉방 시스템을 새로 설치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 점도 장애물로 지적된다.
문화재 보호 정책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문화재나 역사적 건축물에 실외기를 설치하기 위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외관 훼손 우려로 설치가 제한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의 탄소중립 정책도 변수다. EU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전력 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냉방시설 확대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다만 기후변화로 폭염이 반복되면서 냉방 수요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유럽연합 내 에어컨 설치 대수가 약 2억7,5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19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일시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라 장기적인 기후변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유럽도 기존의 냉방 정책과 도시 인프라를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장호진 기자 daegunewsdes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