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내 매출 일부 현지 콘텐츠 재투자 추진…내년 시행 목표
미국 “디지털 무역 원칙 위배” 반발…유럽 문화산업 보호 논리 맞서
K-콘텐츠·국내 OTT 시장에도 파급 가능성
독일 정부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대해 자국 콘텐츠 투자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유럽 간 통상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단순한 문화정책을 넘어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각국의 문화 주권, 디지털 무역 질서를 둘러싼 충돌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30일 유럽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 등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과 방송사업자가 독일 시장에서 발생한 매출의 일정 비율을 독일 및 유럽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법안은 의회 논의를 거쳐 내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독일 정부는 해당 제도가 국내 영상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고 독일어 콘텐츠 제작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투자 재원이 독일 독립영화 제작사와 중소 콘텐츠 기업 지원에 우선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OTT 성장 속 위기감 커진 독일 영화산업
독일이 이 같은 강수를 꺼내든 배경에는 자국 콘텐츠 산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글로벌 플랫폼이 독일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안 독일 내 제작사들은 제작비 상승과 투자 부족 문제를 겪어왔다. 독일 정부는 글로벌 플랫폼이 현지 시장에서 얻은 수익 일부를 다시 콘텐츠 제작에 투입해야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최근 독일 문화계에서는 독일어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제작 투자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세제 지원과 함께 플랫폼 투자 의무화를 병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사실상 보호무역” 반발
미국은 독일의 움직임을 사실상의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특정 국가가 자국 시장에 진출한 플랫폼 기업에 별도 투자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자유로운 디지털 무역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기업들이 사실상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만큼 보호무역적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독일 정부는 세금 신설이 아닌 문화산업 지원 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EU) 규정 역시 회원국이 자국 콘텐츠 산업 보호를 위해 일정 수준의 재정 기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들도 이미 글로벌 OTT 사업자들에게 자국 콘텐츠 투자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 독일의 입법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평가된다.
왜 중요한가…글로벌 OTT 사업 모델 변화 가능성
이번 법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독일 한 나라의 정책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일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별다른 부작용 없이 안착할 경우 다른 유럽 국가들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렇게 되면 넷플릭스와 디즈니+,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들은 국가별로 별도 투자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글로벌 OTT 기업들이 콘텐츠 제작 예산을 국가별 규제 환경에 따라 재배분할 가능성도 거론한다. 이는 플랫폼의 투자 전략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 시장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K-콘텐츠 시장 영향은
국내 콘텐츠 업계 역시 이번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수년간 한국 콘텐츠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폭싹 속았수다’ 등 글로벌 흥행작을 배출했다. 그러나 각국이 자국 콘텐츠 투자 의무를 강화할 경우 플랫폼 기업들의 투자 예산이 여러 국가로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한국 제작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 국가들이 콘텐츠 제작 확대에 나설 경우 한국 제작사와의 공동 제작, 기술 협력, 글로벌 유통 계약 등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콘텐츠 산업에도 관심
지역 콘텐츠 산업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구·경북 지역은 최근 웹툰, 영상콘텐츠, 디지털 미디어 분야 스타트업과 창작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의 현지 투자 확대 정책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지역 제작사들도 해외 플랫폼과의 협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화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독일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문화정책이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 시대에 자국 콘텐츠 산업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향후 유럽 전역으로 확대될 경우 글로벌 콘텐츠 투자 흐름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장호진 기자 daegunewsdes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