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머물고 있는 한국 선박들의 ‘탈출 조건’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이란이 지정 항로 이용과 사전 협의를 요구하면서, 사실상 해협 통과가 자유로운 항행이 아닌 ‘통제 통항’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한국 관련 선박 20여 척이 두 달 가까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선박은 군사적 긴장과 기뢰 위험, 통항 제한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정상 운항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란은 최근 우리 정부 측에 선박 이동과 관련해 일정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심은 사전 협의와 지정된 항로 이용이다. 해당 항로는 이란 영해에 가까운 구간으로, 이란 측의 관리·통제를 받는 구역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비용과 제재 리스크다. 이란은 항로 안내와 안전 확보 명목으로 일정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입장인 반면, 우리 정부는 통행료 성격의 비용 지급에는 선을 긋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해당 항로를 이용할 경우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선사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안전’과 ‘법적 리스크’ 사이의 선택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정 항로를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지만, 반대로 제재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통항을 미루면 물류 지연과 비용 부담이 계속 쌓이는 구조다.
외교 당국은 상황 관리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이란 측과의 접촉을 통해 한국 선박의 안전한 이동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며, 자유로운 항행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운항 여부는 각 선사의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외교 문제를 넘어 글로벌 해상 물류 리스크의 신호로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인 만큼, 통항 제한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과 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누가 통제권을 쥐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해협의 물리적 통로는 열려 있지만, 실제 통과 조건이 강화되면서 사실상의 해상 통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호진 기자 daegunewsdesk@gmail.com
